「제주4·3의 역사적 진실,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 9월 7일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태영호입니다.
오는 9월 7일, 다음 주 월요일, 제주지방법원 항소심 재판부에서 저에 대한 1천만 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2심 공판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법원으로부터 뜻밖의 서류 한 장이 날아왔습니다. 바로 ‘조정기일통지서’였습니다.
재판을 판결로 끝내지 말고, 양측이 ‘적당히 타협하고 합의해 사건을 마무리 짓자’는 의도로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단호하게, ‘조정에 응할 수 없다’는 내용의 조정 거부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왜 거부했냐고요?
물론 개인 간의 돈 몇 푼을 둘러싼 다툼이라면 타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재판은 단순한 명예훼손 다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역사적 진실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자유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름하는 ‘중대한 법적·역사적 투쟁’이기 때문입니다.
원고인 제주4·3유족회는 제가 “제주4·3사건은 김일성의 지시로 촉발되었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1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심 재판에서도 원고 측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제가 1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남로당 제주도당이 무장 폭동을 일으키고 5·10 단독선거를 저지하려 했던 것이, 김일성과 소련의 공산정권 수립 노선과 무관합니까?
법원이 판결을 피하고 조정으로 어물쩍 넘어가는 것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역사적 진실을 규명해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법원에 요청했습니다.
“조정을 취소하고, 객관적인 역사와 법리에 따라 명확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달라.”
충격적 실태 ― 공산주의 무장 폭도들을 ‘열사’로 모시는 ‘좌파’들의 반국가적 폭주!
여러분, 제가 왜 이렇게까지 타협 없이 싸우려 하는지, 최근 제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심하고도 충격적인 실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지난 8월 22일, 제주 애월읍 돌오름 일대에서 일명 ‘4·3항쟁 열사 추모제’라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 현장에는 좌파 시민단체들이 참석했고, 심지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제주4·3평화재단’의 이사장까지 관여되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들이 무엇이라고 주장했는지 아십니까?
“80년의 침묵을 깨고, 4·3항쟁 열사들의 이름을 역사의 앞으로 불러낸다.”
“미 제국주의에 맞서 자주적인 나라를 만들려 했던 이들의 정신을 계승하겠다.”
이렇게 외쳤습니다.
심지어 평화재단 이사장은 “재단이 해야 할 일인데 대신해 줘서 고맙다”는 메시지까지 언론을 통해 밝혔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들이 찾아가 제사를 지내고 ‘열사’라고 칭송한 장소입니다.
바로 국방경비대와 교전을 벌였던 ‘노로오름 유격대 근거지’, 박격포 탄피가 발견된 ‘전투 현장’, 그리고 남로당 무장대가 머물던 ‘아지트’였습니다.
즉, 이들이 ‘열사’라고 부르는 존재는 다름 아닌 남로당 제주도당의 공산 무장 유격대원들이었던 것입니다.
자유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을 저지하겠다며 관공서를 습격하고 경찰과 우익 인사, 그리고 선량한 주민들을 살해했던 공산 무장 폭도들을 ‘열사’라고 추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군경을 이끌다 암살당한 고(故) 박진경 대령을, 거짓 증언과 편향된 주장으로 ‘양민 학살자’라고 낙인찍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추모비 옆에는 모욕적인 안내판까지 세워두었습니다.
무고하게 희생된 도민들의 아픔은 당연히 추모해야 합니다.
하지만 남로당 무장대 폭도들까지 ‘민주화 열사’, ‘통일 열사’로 포장하며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뒤흔드는 이 전도된 역사관을, 도대체 언제까지 방치해야 합니까?
현 사법체계의 문제점과 2심 재판의 핵심
이번 2심 재판에서 제가 명백히 다투고자 하는 법리적·역사적 논리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역사적 평가와 견해의 표명’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려는 현 사법 실태의 문제점입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더라도, 명예훼손은 특정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구체적인 허위사실을 적시해야 성립합니다.
저는 특정 유족 개개인이나 무고한 희생자들을 지목해 폄훼한 적이 없습니다. 제주4·3사건이라는 역사적 비극의 발생 원인과 배경에 대해, 북한 체제에 몸담으며 쌓은 경험과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김일성과 남로당 노선의 영향으로 촉발되었다”는 학술적·정치적 견해를 밝힌 것입니다.
자신의 역사관과 다르다는 이유로 정치적 반대의 목소리를 법으로 봉쇄하려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둘째, ‘김일성의 방침과 남로당 무장봉기의 인과관계’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좌파들은 “김일성이 제주도에 직접 보낸 친필 지령문이 있느냐”며, 제 발언을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1948년 3월, 북조선로동당 제2차 대회에서 김일성이 “남한의 5·10 단독선거를 파탄시키라”는 투쟁 방침을 천명했고, 남로당 제주도당이 이 방침에 호응하여 4월 3일 무장봉기를 일으켰다는 사실은, 1963년 좌익계가 스스로 출간한 『제주도인민들의 4·3무장투쟁사』라는 책에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최고지도부의 투쟁 방침에 따라 하부조직이 움직인 조직적 인과관계를 두고, “김일성의 지시로 촉발되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어떻게 허위이고 명예훼손입니까?
셋째, 피해자의 범주를 마구 뒤섞어버린 편향된 진상조사의 오류입니다.
헌법재판소도 명확히 판시했습니다. 2000헌마238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고 무장세력을 지휘하거나 관공서 방화, 군경 살상에 적극 가담한 자들은 4·3희생자의 범주에 포함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진압 과정에서 과잉 공권력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과, 대한민국을 전복하려 했던 공산 무장 폭도는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일성의 사촉을 받은 남로당 공산 무장 폭도들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된 1,700여 명의 무고한 민간인과 전몰 군경들의 눈물은, 왜 외면하는 것입니까?
만약 이번 2심 재판부가 좌파들의 논리에 손을 들어주어, 저 태영호에게 단돈 1원이라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다면, 저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즉각 3심인 대법원으로 갈 것입니다.
상고심을 거쳐 헌법재판소까지 가더라도, 거대 좌파 정당과 편향된 세력이 만들어놓은 역사 왜곡의 족쇄를 반드시 ‘법치’로 끊어내겠습니다.
역사적 진실을 향한 저의 결의
싸움은 늘 외롭고 고됩니다.
역사적 진실을 향한 저의 아우성을 틀어막으려는 정치적 선동과 법적 소송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김씨 일가의 세습 독재 실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저 태영호가, 역사적 진실을 향한 이 투쟁에서 물러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유 대한민국의 올바른 역사를 사수하기 위해 나서는 사람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다가오는 9월 7일 월요일 재판을 시작으로,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저는 단 한 걸음도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 건국의 가치를 지키고, 공산주의의 해악을 역사 앞에 바로 알리는 일에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습니다.
끝까지 함께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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